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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적인 이슈는?

군맹무상(群盲撫象) - 소경 코끼리 만지기

by 보린재 2022. 4. 19.

경기 광주 분원초등학교 뒷편에는 사옹원 분원이 도요지가 복원되어 있다. 현대식으로 복원하는 것은 좋지만 분원초등학교에서 올라가는 입구에 도로를 닦으면서 높이를 낮추다보니 흙을 파내서 뿌리가 드러나 있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나무 뿌리의 일부에 보호장치를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3주전 이곳을 방문했을때도 뿌리 밑에 있는 흙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공사를 마쳤으면 감독기관에서는 보완을 요구하거나 예산을 조금 더 들여서 제대로 보기 좋게 해놓으면 오가는 사람들이 눈살이 찌뿌리지는 않을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사고개선이 요구된다.

 

군맹무상이란?

군맹무상은 군(, 무리군), (, 소경 맹), (, 어루만질 무), (, 코끼리 상)의 한자어 조합이다. 군맹무상의 뜻을 보면, 장님 여럿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뜻이다. 장님이 아무리 코끼리를 만진다한들 제대로 코끼리의 생김새와 식생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유사개념으로는 군맹평상(群盲評象)이 있다. 군맹무상과 군맹평상은 한자 하나가 다르지만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도 된다.

 

군맹무상은 모든 사물과 현상을 자기 자신의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그릇되게 판단하는 것을 이르는 사자성어로, 출처는 불교경전인대반열반경(涅槃經)이다. 그럼 대반열반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고대 인도의 경면왕(鏡面王)이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들에게 코끼리라는 동물을 가르쳐주기 위해 그들을 궁궐로 모이게 하였다. 그들이 모두 모인다음 신하에게 코끼리를 끌고 오게 한 다음, 코끼리를 만져보게 하였다. 이들이 코끼리를 다 만져보자 경면왕이 소경들에게 코끼리는 어떻게 생겼느냐?”라고 물었다. 맹인들은 한결같이 자기가 만져본 부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먼저 상아를 만져본 맹인은 무와 같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귀를 만져본 소경은 키와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머리를 만져본 소경은 마치 돌과 같습니다.’라고 대답하였고, 코를 만져본 소경은 마치 절굿공이 같사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다리를 만져본 소경은 마치 널빤지와 같사옵니다.’라고 대답하였고, 꼬리를 만져본 소경은 마치 새끼줄과 같사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고사성어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 인간들은 자기가 경험해본 것만이 참이라고 믿고 그것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이다. 인간계에 있어서 영원한 참과 거짓이 어찌 존재하겠는가?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류에게 던져진 가장 커다란 질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였다. 과연 인간은 이성의 판단에 의해 행동하는가?’ 아니면 동물과 같은 욕구와 욕망에 의해서 행동하는가?’였다. 현대의 철학자들은 이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대세이다.

 

군맹무상의 동서양적 의미

여기서 이 고사성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코끼리는 석가모니를 의미하고, 소경들을 석가모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중생들을 가리킨다. 이를 다르게 해석해보면, 그만큼 진리와 진지(眞知)에 도달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흔히 우리 주변에도 이런 군상(群像)들은 많다. 얕은 지식으로 세상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듯이 행동하는 그런 부류들 말이다. 이들은 마치 소경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소경들이 자신들이 만진 부위가 무엇과 같은지 만을 얘기하고, 자기들의 대답이 마치 참인 것처럼, 진리인 것처럼 믿으니 말이다.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은 저서신기관, Novum Organum에서 4가지 우상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우상이란, 편견이나 선입견을 말한다. 4가지 우상을 보자. 모든 인간에게서 공통적인 편견으로 인해 나타나는 종족의 우상’, 개인들의 특유한 즉 우물안 개구리식 사고로 인한 동굴의 우상’, 사회집단과 모국어에 의해 조장되는 편견인 시장의 우상’, 잘못된 배움으로 인해 형성된 신념이나 편견에 의한 극장의 우상이 그것이다.

 

베이컨은 가장 근본적인 편견을 종족의 우상이라 보았다. 종족의 우상은 인간중심의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편견이나 선입견이다. 인간과 같은 포유류인 원숭이도 돌고래도 각자의 관점에서 사물을 판단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인간은 동물들과 달리 목적지향적 행동과 태도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도 동물도 모두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하찮은 미물도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있다고 말하거나, 소소한 사건도 반드시 신의 계획 하에서 발생한다고 말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중심주의 사고의 밑바탕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인가? 서양의 합리주의자들이 말하는 이성인가? 아니면 감성인가? 만약 이성이라고 한다면 행동의 옳고 그름을 제대로 따져 옳은 행위는 권장하고, 올바르지 못한 행위는 스스로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일수록 점점 자신의 수치심을 교묘한 위장술이나 언변술을 이용해 더 예쁘게 포장한다.

 

인간은 결코 완성된 존재일수 없다. 미완성의 존재로서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가소성에 입각해서 행동해야 한다. 잘못을 뉘우치고 각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곧 수치심이다. 이 수치심은 자기의 행동에 대한 일종의 책임윤리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새 정권에서 국무총리와 장관들을 지명했다. 앞으로 험난한 청문회 과정을 통해 각각 지명된 자리에 취임하거나 낙마하게 될 것이다. 이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새 정부도 인사검증의 문제도 도마에 오를 것이다. 내로남불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사뭇 궁금하다.

 

여기서 사견(私見)을 덧붙이자면, 교육부총리로 지명된 인사의 부적절은 반드시 지적하고 싶다. 자신이 대학총장시절 대기업 사외이사로 재직했다. 대학 인사위원회의 셀프 검증 등의 문제를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총장이 대기업 사외이사로 재직했다는 것 자체만 가지고도 스스로 수치심을 가져야 한다. 더 나아가 재직 기간 동안에 1억여원이 넘은 보수를 챙긴 것이다. 직무수행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대학총장으로서 도덕적 해이의 전형적 사례이다. 후보자의 더 큰 문제는 대학입시 전형에서 수시의 비중을 더 낮추고 정시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발언은 지명자의 교육관이 전 근대적임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학교 현장의 교육자들과 의식있는 학부모와 교원단체들의 노력으로 수시의 비중을 높여왔고, 이를 통해 주입식교육, 암기식교육의 병폐를 극복해 나가고, 창의력 교육을 실시하는데 주력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장관 지명자의 한 마디는 학교현장을 다시 주입식교육의 형태로 되돌리는 가장 큰 해악을 잉태하고 있다 하겠다.

 

이런 행태를 어찌 군맹무상(群盲撫象)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를 잘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이고, 설명 보인다 해도 도무지 판단할 능력이 없는 인간 군상들의 집합이다. 한심하기 그지없다. 요즘 대학생들이 창의력이 부족하다, 어려움을 헤쳐 나갈 의지가 없다, 너무 편한 일자리만 원한다.’ 등등의 얘기들을 너무 쉽게 얘기한다. 이는 하나는 알고 나머지는 모르는 사람들의 또 다른 군맹무상이다. 이들이 왜 그렇게 되었나, 그리고 청년들의 도전정신과 문제해결력이 미흡했는가는 지금 시점이 아니라 과거에 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소설을 읽으면, 학부모나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시험에 안 나오고 머리만 산란해지게 왜 소설을 읽느냐고 야단을 친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창의력이 나오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겠는가?

 

군맹무상으로부터 벗어나자

요즘 산과 들로 많은 인파들이 몰려들고 봄 향기를 느끼면서 여기저기서 탄성을 지른다. 공원엘 가보면 젊은 엄마 아빠들이 어린 아이에서부터 초등학생까지 데리고 나와 서로 공기방울 놀이도 하고, 공차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한다. 나는 교육자로서 아이들의 행동과 부모의 행동들을 유심히 보곤 한다.

 

여기서 아쉬운 점이 있다. 일부 젊은 부모들의 경우 아이들이 너무 과잉보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절 없이 행동할 경우 올바른 예절법을 가르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아이들이 잘했다고 칭찬만 한다. 또한 괜찮아그럴 수 있어 라고 하면서 아이를 다독여준다. 부모 입장에서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은 이 아이들의 경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한 번 가정해보자. ‘새가 나무꼭대기에서 소리를 내며 지저귀고 있고, 노랑나비가 날아다닌다.’고 말이다. 이때 감성적인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새가 노래하고, 나비가 춤춘다.’라고 말이다. 우리는 어렸을때부터 부모를 통해 교과서를 통해 그렇게 배웠다. 그리고 만약 시험에 나온다면 이걸 정답이라고 골랐다. 실제 그게 정답이기도 했다. 왜 이것이 정답인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다. 수업진도 나가기에 바빴고,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줄세우기에 바빣다. 이렇게 가르쳐놓고 너희들은 왜 미래정신이 없느냐, 도전정신이 없느냐 라고 힐난해서는 안 된다. 그건 모두 교육당국과 어른들이 책임질 일이다. 이제라도 이런 교육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모범답안이 아니라 그냥 새는 지저귄 것이고, 나비는 그저 살기위해 날갯질을 한 것뿐이다. 모든 현상에 대해 모범답안을 정해놓고 여기에 맞추는 교육은 전체주의 시절이나 가능했던 교육이다. 인간중심의 사고 즉 종족의 우상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타파해야 할 때이다.

 

나가면서

흔히 무엇인가를 상상(想像)한다고 얘기할 때, 상상이란 경험하지 못한 일을 마음속에 그리며 미루어 생각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상상하는 대로 그려보라는 학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왜 그러한가. 상상만 하고 체험(경험)하지 않을 경우 군맹무상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삶은 완성형이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때 상상은 부정형이어서는 안 되고, 긍정형이 되어야 한다.

 

고대 성인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글로 진리(眞理)를 남기지 않았다. 성인들은 나는 진리를 아직 깨치지 못했다고 하였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만 얘기 했다고 한다. 하기야 유한한 삶을 사는 미미한 인간이 어찌 무한한 삶을 논할 수 있겠는가. 사실 나는 코끼리를 만진 장님처럼 확신에 찬 말 한마디라도 해 보았으면 하고 내 자신을 재촉할 때가 더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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