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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었던 책(도서)?

헨리 키신저의 중국이야기

by 보린재 2022. 1. 27.

#이번에는 헨리 키신저 박사의 중국이야기라는 책을 골랐다. 이 책이 출간된지 만 10년 2개월만에 다시 읽었던 이유는 트럼프에 이어 등장한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중국과 미국과의 갈등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키신저 박사는 미국과 중국 모두 자신들의 독특한 가치관을 대표한다고 믿고 있다고 본다. 미국은 선교사식 외교를 중국은 문화적인 접근을 한다는 것이다. 즉, 미국은 영향권에 있는 국가를 개종시키려 하는 반면, 중국은 중국은 그렇지 않다고 진단한다. 이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동의할 수 없다.

#이 책은 영역이 구분되어 있지는 않지만, 나는 세 부분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첫번째는 중국의 기원인 황제 탄생부터 현대 중국의 등장까지이고, 두번째는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모택동의 중국, 세번째는 모택동 사후 덩샤오핑의 등장과 개혁개방정책과 그 후로 나눌 수 있다. 물론 미중수교의 막후 협상을 주도했던 키신저박사가 본 중국과 동북아와 한국전쟁, 대만해협의 위기, 중소갈등에 관한 부분의 양이 상당하다. 3회에 걸쳐 키신저의 견해와 내가 보는 중국의 관점을 적절히 섞을 것이다.

#먼저 나는 전쟁과 평화 그리고 중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시작하기에 앞서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대해 간략하게 얘기하고 싶다. 칸트는 영구평화는 두가지 가운데 하나의 방식으로 우리 셰상에 찿아올 것이라 주장했다. 인류의 직관과 통찰에 의해, 아니면 인간에게 다른 선택을 허락하지 않는 갈등과 재앙에 의해서, 지금도 우린 이 두 가지 서있다. 만약 이 두가지가 조화를 이룬다면 세상을 뒤흔들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게 되겠지만 후자라면...

#이 책은 미중수교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책이다. 그런만큼 방대한 중국의 역사적 사료를 수집했을 것이다. 시작은 중화사상의 핵심인 황제사상으로 시작한다. 그는 중국에서 황제(삼황오제)는 건국의 영웅으로 기록되지만 이같은 창건신화 속의 황제는 하나의 제국을 창조하는게 아니라, 복구하고 부흥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키신저 박사는 황제 이전에 중국이 있었다는 얘기라 적고 있다. 맞는 얘기이다. 자존심하면 세계에서 서러워할 중국이 인류문명의 출발점을 황허문명에서 찿으려는 노력은 가히 눈물이 날 지경이니 말이다.

#고대부터 중국은 중국문화 및 정치 형태와 얼마나 가까우냐에 따라 여러 등급의 진공국으로 나누었다. 이런 중화전통을 이어받은 나라다. 고대 중국은 황제를 중심으로 하에 진공을 자치는 민족을 오랑캐라 불렀다. 이름하에 동이(한민족), 서융, 남만, 북적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황제가 신화속에 등창하는 것은 중국 문명이 혼란에 빠진 다음이다. 이때 새로운 영웅이 군사를 일으켜 이 지역의 평온을 되찿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한다.새로운 질서 수립과 체제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모택동을 이에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이 키신저의 관점인듯 하다.

#사실 중국은 1820년에만 하더라도 세계 국내총생산의 30퍼센트를 차지했고 이는 서유럽, 동유럽, 미국을 합친 것보다 높은 수치였다. 이랬던 중국이 19세기 중엽 이후 서구 열강과 일본, 러시아의 침탈대상이 된것은 황제를 중심으로 천하 즉 하늘 아래 모든것을 관장한다는 중화라는 국수주의 때문이라 키신저는 진단한다. 일견 타당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중화사상의 또 한축은 유교사상이다. 공자는 위계질서에 의한 사회질서 확립을 강조했다. 즉 공감하는 통치의 원칙과 올바른 의식의 집행, 그리고 효를 통해 권력의 책략보다는 사회의 통합과 공존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통적인 이민족과 침략자들을 대하는 방식은 이이제이였다. 즉 이들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야만족들끼리 서로 연합하는 것을 막는데 있었다. 키신저는 19세기 중엽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등에게 이 전법을 구사한 것이 중국에 큰 상처를 주었다고 본다.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바둑을 그 예로 든다. 바둑은 상대방보다 비교 우위를 추구한다. 즉 전략적 포위를 통해 상대방의 집을 무너뜨리는 전략이다. 이는 요즘말로 상대의 전략적 잠재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서구세력은 총과 대포로 무장하고 자국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데 어떻게 화살과 칼로 이길 수 있겠는가?

#청 왕조가 1912년 멸망하고 장제스와 미국의 연합을 물리친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해 다시 통일된다. 이를 키신저는 구조상으로 보면 새로운 왕조였으며 실제적으로는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데올로기라 적었다.

#키신저의 중국이야기 두번째를 시작한다. 여기는 본격적인 모택동의 시대가 펼쳐진다. 모택동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 통치시기를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나의 분류이므로 따르지 않아도 된다. 첫번채 시기는 모택동이 대동사상을 앞세워 통치사던 시기로 대약진 운동으로 마감된다. 두번째 시기는 모택동이 국내에서 지속적인 혁명에 속도를 속도를 붙이려는 모택동의 시도가 압도적으로 돋보이는 시기이다. 이지속적 혁명을 밀고나간 힘은 도덕적 이념적 활기가 물리적 한계를 마오쩌둥의 신념이었다. 이는 문화혁명의 시기로 이름 붙일 수 있다. 세번째 시기는 미국과 수교하여 모택동의 사망과 함께 일명 장칭을 위시한 4인방과 등소평의 대립의 결과 등소평의 실용주의 승리로 끝난 시점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라는 대업을 완수한 모택동은 대동사상을 기치로 내건다. 모택동이 가장 흠모했다는 진시황. 그는 시를 지어 진시황을 흠모하기도 했다. 이 시기 모택동은 지속적 혁명이라는 슬로건은 그 때까지 중국을 지탱해왔던 사상, 문화, 관슾 등을 제거하는 반유교주의 전통에 근거한다. 이 첫번째 시기는 소련과는 이념적 우방으로서, 미국과의 균형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였다. 인도와는 히말라야 산맥에서의 국경분쟁, 한국전쟁의 참전, 1954년과 1958년의 타이완 위기 초래, 중소국경분쟁, 하지만 이시기는 대약진운동으로 대표된다. 이 운동은 농업과 공업분야의 발전을 위한것이었지만 결국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만다.

#두번째 시기는 1959년 달라이라마가 인도에 망명하고 인도와의 국경분쟁, 후르시죠프의 스탈린격하와 더불어 중국을 더 이상 전통문화의 잔재를 4가지 구습 즉, 낡은사상, 낡은문화, 낡은풍습, 낡은습관을 타파하기 위한 문화혁명이 핵심을 이룬다. 이때 국사책에도 등장했던 홍위병들이 활약하게 된다.

#세번째 시기는 후르시죠프와의 갈등, 그리고 이어 등장한 브레즈네프의 소련과의 갈등이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오자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도모하게 된다. 미국은 닉슨대통령과 이 책의 저자 키신저의 활약이 두드러진 시기였고, 중국은 2인자였던 주은래의 활약이 괄목하다. 이후 주은래는 권력남용죄로 1973년을 기점으로 사실상 축출되고 1976년 1월 8일 사망하고, 그 자리를 등소평이 대신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키신저는 모택동과 주은래에 대해 흠모에 가까울 정도로 평가가 후하다. 물론 자신과 수교를 위한 막전막후 상대였으니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사후 인물의 됨됨이에 대한 평가는 별개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후한 평가에 고개가 갸웃해진다.
#등소평의 복귀는 주은래 총리의 실각과 맥을 같이한다. 등소평은 1966년 문화혁명때 첫번째 모든 직위를 박탈당한다. 이후 1973년 복귀했을때 모택동은 등소평이 겪은 수모에 사과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복권된 후 뉴욕에서 개최된 유엔총회 특별회의에 참석함으로서 존재감을 과시하게 된다. 등소평은 자신을 촌사람으로 소개하면서 중국이 외국에서 배울것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정치적 올바름 보다전문적 능력을 중시해야하고 개인이 탁월한 업적을 달성하면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이를 흔히 실용주의라 부른다. 다시 말하면 전문적 능력을 공산주의 이념보다 우위에 두었다는 의미이다.

#등소평은 중국의 발전을 위해서 동남아, 일본, 미국, 유럽국가들을 순방하면서 이들국가의 자본을 유치하고,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유학을 보내고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이유는 당시 아시아의 잠룡 즉 싱가포르, 홍콩, 대만, 한국의 경제성장과 기술력의 우위를 목도한 결과라 보여진다. 등소평이 이들 잠룡을 능가하고. 전세계에서 중국의 국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경제발전 밖에 없었다고 보여진다.

#등소평의 통치기간에서 가장 커다란 위기는 천안문 사건과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의 붕괴이다. 천안문 사건 이전만해도 정권 수립이후 가장 안정된 상태였고, 미국, 유럽, 일본등 과의 관계도 가장 좋았다. 특히 미국과는 힘을 합쳐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점령을 저지했고, 미국은 중국에 무기를 수출하기도 했다. 이런 관계에 찬물과 경색을 가져운 사건이 천안문이다.

#천안문의 출발점은 개혁파였던 후야오방의 사망에서 비롯된다. 후야오방을 애도하던 사람들이 천안문 광장의 인민영웅 기념비에 꽃다발과 애가를 바치면서 후야오방의 개혁사상을 기리면서 시위를 벌이는 와중에 이것이 폭동으로 번지게 되고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반정부 시위로 번지게 된다. 또한 티베트족과 위구르 회교도 들의 동요가 맞물리면서 공산당은 군대를 동원한 강제진압에 나서게 된다. 이 사건으로 개혁가로 칭송받던 등소평은 폭군으로 비난받고 전세계의 지탄대상이 되고, 경제제재 등을 받게된다. 여기서 미국은 겉으로는 강경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등소평과 비밀특사를 파견하여 등소평과 협상하여 해결하게 된다. 국제사회에서 절대적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과연 마오쩌둥과 등소평은 대립적이었는가를 생각해볼 때 나는 다르지 않다고 본다. 즉 마오쩌둥은 이념에 근거를 둔 지속적 혁명을 추구했다면, 등소평은 개인의 이니셔티브를 기반으로한 지속적 혁명이었다고 본다. 즉 혁명과정에서 이념인가 아니면 경제적 자립이었느냐 만 다를 뿐 둘은 똑같이 중국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지속적 혁명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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