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소한 일상?

#잔소리메뉴판의_해학(諧謔)_공감적이해

by 보린재 2022. 2. 6.

설 명절 전 우연히 카톡을 보니 친구들 모임에 이 메뉴판이 올라와서 보다 진일보한 글귀를 보고 한참을 웃었다. 유로서비스이므로 '선결제해야 한다'는 글귀였다. 아마도 코로나 사태로 인해 배달음식이 선풍적 인기를 끌으면서 여기에 영향을 받은 잔소리도 미리 선결제 후에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걸 해학(諧謔)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COVID-19가 3년째로 접어든다.

요즘 청첩장이 모발일로 계속 발송된다.

또 부고장이 켜켜이 쌓인다.

이런 와중에 설명절을 맞이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나로 인해 확진자가 급증할지 모르니 조용히 집에 틀여박혀 지내겠는가? 이번이 아니면 가족과 친인척을 만나기 어려울 것 같으니 반드시 만나야겠다라고 생각하겠는가? 사실 전자는 코로나 사태 초기라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3년째인 현 상황에서 그걸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사실 기다림이란 것은 무언가 긍정적인 것을 기대하게 된다. 먼 미래에는 지금 보다 나은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는 기대,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지금은 힘들지만 조금만 참으면 나아질 것이라는 실낱같은 기대 이런 등등의 것들이 기다림속에 포함된 의미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젠 이런 기대, 희망 등이 오미크론이라는 변이에 의해 사라지듯이 우리의 삶도 그렇다고 생각해 본다.

 

위의 잔소리 메뉴판으로 들어가보자. 중고등학생이든 대학생/취준생이든 직장인이든 부부든간에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 일명 잔소리이다. 잔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듣는 사람에게 '네 인생이 도움이 되라고, 나중에 힘들게 살지 않게 하려고, 어른들 말을 잘 들어야 자다가도 콩떡이 떨어진다'는 괘변으로 잔소리를 반복한다. 나 역시 가정을 꾸려 살면서도 많은 잔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이런 잔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불쾌함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공감적 이해능력'의 상실이다. 여기서 공감적 이해란,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들의 내면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이 능력은 대화 상대자 간에 서로 현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정서적으로 연결되었을 때, 서로 간에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말이나 행동에 숨어있는 이면의 감정들을 서로 자기가 느낀 것처럼 느껴야 가능해진다. 그런데 위 잔소리 메뉴판에 나와 있는 내용들 어디를 봐도 이런 '공감'의 측면은 보이지 않는다.

 

공감적 이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 보자. 부모와 자식, 친구간의 관계,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 모두 마찬가지이다. 자 내가 느낀 것들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첫째, 대화 상대자는 먼저 자기의 틀을 벗을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신을 신고, 상대방의 눈으로 보며, 상대방의 귀로 듣고, 그 사람의 심장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상대방을 공감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둘째,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 감정의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종류와 내용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의 종류와 표현 방식에 문화적인 영향을 배제할 수 있기 떄문에 상대방이 속해 있는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셋째, 상대방의 감정을 깊고 정확하게 경험하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대화의 일방이 상대방의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를 통합하여 상대방이 실제화하지 못한 감정까지도 대신 느껴 줄 수 있는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언젠가 내가 강연 중에 이런 얘기를 했더니 '성인 군자같은 소리하고 있네'라는 비아냥이 돌아왔다. 전 한참을 생각하다 무시하기로 하면서 비유적으로 그 비아냥에 대답을 하면서 나중에 그 사람으로부터 사과를 받은 적이 있다. 사실 친구관계도 보면 경제적 차이, 지역적인 차이, 결혼여부의 차이, 자식의 있고 없음의 차이 등 환경이 주는 이유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를 맺으면서 나타나는 문제는 나의 문제도, 너의 문제도 아닌 경우가 참 많다.” 이런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맺음이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무관심하거나 문제를 그대로 놔두고 지나칠 수는 없다. 일정 시점 시점마다 관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주변 사람들도 “학교 친구이까 어쩔 수 없이 만난다.” "고향 친구니까 어쩔 수 없이 만난다." 이런 경우를 간혹 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친구를 만나고 나면  "기운이 빠지고 시간이 좀 아깝기도 한데 오래 돼서 (관계를) 끊을 수는 없다." "만나면 늘 타인 험담을 하고는 하지만 나한테는 잘한다." 그래서 만나지만 사실 만나는게 너무 힘들다라고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 다면 나는 단언코 '그 사람을 만나지 말라'라고 조언할 것이다. 그 사람이 친구가 나한테만 잘해주기 때문에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면 그 친구의 행동이나 말이 어느새 나에게 전염된다. 더군다나 그게 가족이라면 자신에게 주는 심리적 스트레스와 위험도는 너무나 크다고 본다.

 

그렇다면 관계 맺음과 관계정리에 필요한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첫째 공감능력, 둘째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가?의 정도이다. 그 중에서 으뜸이라면 공감이라 본다. 이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음이 착할 것이고, 좋은 사람들을 사귀었을 것이고, 타인을 잘 도와 줄 것이고, 의리가 있을 것이고, 오래 사귀어도 변함없이 상대를 존중(경청)해 줄 것이고, 정직할 것이고, 절제를 할 줄 알 것이고, 칭찬을 잘 할 것이다. 사실 배운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죽을때까지 배워야 한다. 그렇다고 반드시 성인 군자의 책을 읽거나 철학 책이나 심리학 책을 읽을 필요는 없겠으나, 항상 내 자신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배움은 가능하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봄으로써 남에게 가족에게 친구에게 상처주거나 험담하는 말을 하지 않게 된다. 이게 자신으로부터 배움이다.

 

내 자신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가족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아버지 어머니의 말인데 왜 그 자식들은 힘들어하고 자존감이 낮아질까?" "사랑하는 자식들의 말인데 왜 부모들은 상처를 받을까?" 잔존감이 낮아지고 상처를 받으면 받을수록 사회생활에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자식들은 보모의 말 한마디에 의외로 상처를 많이 받는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관계심리학 전문가가 라디오에서 했던 말을 인용해보고자 한다. "나는 네가 사람들한테 미움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인정받았으면 좋겠어"라는 소망이 담긴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들과의 대화에서는 이처럼 "소망을 직접 바로 말하는 것이란다. 우리 뇌는 6초면 그거 생각해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맞는 말이다. 만약 이런 말이나 행동을 보여준다면 위 표에서 나온 잔소리 메뉴판을 사라지지 않을까? 나 역시 이 얘길 듣고 깊은 반성을 했다. 내 자신이라고 상처주는 말을 하지 않고 살았겠는가? 언제부터인가 나 역시 아이들과 대화할 때 쉼호흡을 하고 얘기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 이후 아버지를 대하는 아이들의 자세가 사뭇 달라짐을 느꼈다. 가족관계가 한결 부드러워짐을 체감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 습관을 유지하려 무척이나 노력하는 중이다.

.

.

.

#잔소리메뉴판의해학

#선결제후사용

#COVID-19위기_급증하는_확진환자

#공감적이해

#부모와자녀관계에서주의해야할점

#배우려고노력하는가?

#칭찬보다더좋은말은없다

#보린재의명상

#뜨거운커피한잔의여유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수유꽃과 목련  (0) 2022.03.15
#감동의 파스타....포도주  (0) 2022.02.13
외손주 - 생명의 고귀함  (0) 2022.02.01
김장  (0) 2021.12.29
생일과 가족  (2) 2021.12.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