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알림글

#토문강(土門江)공부방이라 칭한 이유....

by 보린재 2021. 11. 7.

이 블로그의 제목을 토문강 공부방이라 한 이유 중 하나는 제가 전공했던 분야가 #남북한 #교육과 #문화에 관한 분야예요. #남북관계 전체 영역 중에서 교육과 문화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리나 #영토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죠. 이런 이유로 #토문강공부방이라 했습니다. 이는 곧 제 자신이 이 블로그에 올린 분야의 영역이 넓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죠^^.

 

#토문강은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선을 기록한 백두산 정계비가 1712년(숙종 38년) 세워졌는데요. 이 백두산정계비는 청나라의 오라총관(烏喇摠管) 목극등(穆克登) 등과 조선 관원들의 현지 답사로 세워졌어요. 그 이전부터 당시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는 자주 분쟁이  발생합니다. 특히 숙종 11년(1685년) 백두산 부근을 답사하던 청나라 관원이 압록강 건너 삼도구(三道溝)에서 조선 채삼인(採蔘人)들의 습격을 받아 크게 외교 문제가 발생하였고, 그 이전인 1690년과 1704년, 1710년에도 두만강·압록강 건너에서 중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살해된 일이 생겨 청나라 정부의 항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백두산정계비에는 청나라와 조선의 국경은 ‘서쪽은 압록강으로, 동쪽은 토문강으로서 분계선을 삼는다’고 되어 있다. 이를 두고 청나라는 토문을 두만강이라 하며 간도 일대를 청나라 땅이라 했다. 이에 조선에서는 두만강은 정계비에서 수십 리 밖의 지점에서 발원한 것이므로 비에 표시되기에는 너무 먼 강이며, 정계비 근처의 물 한줄기가 토문강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토문강이 확실한데, 당시의 토문이라는 지명은 두만강을 지칭하는 게 아닌 만주 용어로, 지금의 쑹화강 지류를 가리키는 용어라 했다. 하지만 분쟁은 끝나지 않았고, 청일전쟁 후 일본이 남만주철도부설권을 얻는 대신 간도를 청에 넘겨 버려 지금은 중국의 땅이지만, 간도를 포함한 만주지역(동북 3성으로 재편)은 남북이 통일된 이후 영토 주권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게 고려해 볼 사항이라는 개인적 견해를 피력해 보면서 마칩니다.

 

#토문강 #토문강공부방 #보린재 #명상 #보린재와명상 #백두산 #백두산정계비 #숙종 #조선 #조선왕조 #청나라 #조선과청나라 #두만강 #압록강 #두만강과압록강 #쑹화강 #간도 #동북3성 #남북통일 #남북관계 #영토주권 #청일전쟁 #남만주철도부설권

#보린재의명상 #뜨거운커피한잔의여유

'#알림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녹차꽃  (2) 2022.01.3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