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소리
⑴ 흰소리?
‘흰소리’는 흔히 쓰이는 단어가 아니다. 예컨대 ‘그 애는 흰소리를 하며 설치기는 하는데 제대로 하는 일은 없다.’와 같이 ‘터무니없이 거들먹거리거나 허풍을 침 또는 그렇게 하는 말’을 흰소리라 한다. 흔히 ‘허풍’을 잘 치는 사람을 일러 ‘흰소리 그만해’라고 말한다.
갑자기, 왜 흰소리란 단어를 떠올렸는가? 2022년 3월 19일에 내가 느끼는 상황을 표현할 말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만하다’ ‘무능하다’ ‘혐오스럽다’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내 자신의 품격을 떨어뜨리기 보다는 조금 있어 보이고 싶기도 했고, 오늘만은 고상해 보이고 싶기도 해서일 것이라는 욕심이 앞서기도 했을 것이다. 앞으로 전개하는 내용은 ‘흰소리’와는 약간 거리가 멀 수도 있겠지만 ‘허풍’ 또는 ‘분수를 모르는’ 혹은 자신을 돋보이려는 의도 또는 내용과 연계시켜 이해하면 어느 정도 이해되리라 본다. 또한 그러한 시도를 의미한다고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이 ‘흰소리’의 의미에 근거해서 보자.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는 크게 두 가지의 판단, 즉 ‘익숙한 판단’과 ‘숙달된 판단’에 근거한다. 그 중에서 전자에 더 치중해서 판단하면 ‘허풍선’이 되기 쉽다. 이런 판단은 가끔 양극단을 오고가거나 아니면 ‘중도’라는 지대에 머물게 된다.『전쟁론』을 썼던 클라우제비츠는 ‘중도란 옳고 그름도 없는 중도는 결국 아무런 가치도 가지지 못한다.’고 질타했다.
⑵ 익숙한 판단으로서 ‘졌잘싸’
‘익숙한 판단’이란, 자신의 천부적 재능이나 아니면 ‘경험칙(관찰과 경험을 통해 얻은 법칙)’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천부적 재능이란, 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해야 하는데, 이 인정이라는 것도 자신의 업적의 훌륭함의 정도에 따라 판단되므로, 이 역시 경험칙의 작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익숙한 판단은 단순한 행동(전진이야 후퇴냐)만을 위한 판단이며, 판단대상에 대해 아무런 회의(懷疑)나 이론적 근거를 가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내적 진보를 이룰 수 없다.
‘졌잘싸는 이번 선거에서 패한 민주당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졌지만 잘 싸웠다’의 준말이다. 무엇을 잘 싸웠다는 말인가? 대선의 승부가 결정 난 이후 첫째, 둘째날은 ‘저희들이 부족했습니다’ ‘반성합니다’ 류의 메시지가 넘쳐나더니 이젠 패배의 책임을 대통령에게 돌리기도 한다. 정작 책임을 지고 대오각성해야 할 대상은 ‘국회의원’들이다. 아직도 자리를 두고 다툼을 하고 있느니 이들에게 무슨 각성과 반성을 기대하겠는가? 이래서는 제대로 되는 일도 미래의 약속도 허망한 것이 될 터이다. 이것이 흰소리로 들리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⑶ ‘소통’, ‘힌소리’가 되지 않으려면...
요즘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청사로 옮기는 문제로 연일 날선 비판과 반박이 고가고 있다. 국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폐쇄적인 현재의 청와대를 벗어나 용산으로 옮기겠다는 운석열 당선자측과 이제 야당이 된 민주당과의 설전이다.
‘소통’이란, 트여서(疏) 서로 통함(通)이다. 즉 ‘사물이 막힘이 없이 잘 통함’, ‘서로 잘 통하다’는 의미이다. 기본적으로 소통은 언어(말)을 통해서 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정반대이다. 내가 결정했으니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소통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청와대는 이승만이 집무를 시작한 이래 74년이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청와대가 제왕적 대통령(나는 이전글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제왕적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썼다.)의 본산이라거나 폐쇄적이라는 주장이 자주 보인다. 홍준표 의원도 밝혔듯이 ‘청와대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이재오 국힘당 고문은 ‘청와대 이전은 결국 무속의 영향이라고 볼 수밖에 없게 됐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국정 최고 컨트롤타워이고, 안보 컨트롤타워는 국방부이다. 과연 이 국방부가 50일 이내에 이전이 가능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윤당선인은 “용산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합참) 구역은 국가안보지휘시설들이 잘 구비돼 있고, 청와대를 시민들에게 완벽하게 돌려드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호조치에 수반되는 시민의 불편도 거의 없다”고 이전 이유를 설명했다. 이 설명이 윤 당선자는 “청와대는 제왕적 권력의 상징으로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고 밝혔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건물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⑷ ‘수주대토(守株待兎)’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출마 자격(피선거권)만 있다면 누구나 출마할 수 있다. 그렇다고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두 사람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요즘 러시아와 전쟁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 우리나라 윤석열 당선자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행정경험과 국회경험이 없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그리고 현직에서 곧바로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되었다는 점 또한 공통점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두 사람 모두 두 가지 경험을 결여한 채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점은 정치적 외교적 미숙함이 국가를 위기로 빠뜨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쟁에서 국가원수는 군인들과 함께 총을 드는 것이 아니라 군 통수권자로서 전쟁의 승리를 위한 전략과 위기를 극복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즉 익숙한 판단이 아닌 숙달된 판단에 따른 정책적 전략적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윤석열 당선자 역시 숙달된 판단이 아닌 익숙한 판단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것 같다.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방식만으로....청와대는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라는 선글라스를 끼고 바라보는 것이다. <한비자(韓非子)>에 ‘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말이 나온다. “토끼가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는 것을 본 농부가 그 이후로는 또 따른 토끼가 죽기를 기다린다.”는 사자성어이다. 우연히 행운만을 바란다는 뜻도 있지만,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풍자의 의미도 담고 있다. 윤석열 당선자는 용산으로 이전 결정은 ‘수주대토(守株待兎)’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⑸ 흰소리에서 벗어나자
우리는 가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이런 말을 한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라고 말이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위대’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특히 ‘코로나 위기’대처에서 보여준 한국인들의 국가에 대한 ‘신뢰’, 희생정신, 협동정신, 인내심 등은 감히 다른 민족들이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국가가 추구하는 정책의 성공여부는 국민들의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신뢰를 얻는 방법은 허물없는 ‘소통’이다. 인간은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도 하지만 ‘이성’이 가끔 작동하여 합리적 판단을 하기도 한다. 합리적 판단은 곧 숙달된 판단이라 할 수 있다. 국가는 물론이고 윤석열 당선자 역시 국민들과 국회의원 들이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의 믿음을 얻어야 한다.
오늘 아침 기사를 보니, 윤 당선인이 국정 수행을 “잘할 것” 49.2%, “잘 하지 못할 것” 45.6%로 3월 2주차 조사의 52.6%에서 3.5%가 하락한 수치이다. “잘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응답은 41.2%에서 4.4% 오른 45.6%이다. 윤 당선자와 문대통령의 희비쌍곡선이 교차하고 있다. 윤 당선인의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응답이 높으면 문대통령의 국정수행지지율이 올라가고, 반대이면 문대통령의 국정수행지지율이 올라간다. 곧 이 두 사람은 전직과 현직으로 운명이 뒤바뀔 것이지만, 당선자의 국정 수행지지율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가 50%도 넘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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